혀꼬부라진 노래

Matilda - 해리 베라폰테

살핌과 나눔 2011. 10. 19. 14:49



 
Harry Belafonte
해리 베라폰테

Matilda

(마틸다)

그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자메이카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나 자랐다

비록 8세부터 5년간
어머니와 함께 자메이카에 거주한 경험이 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낸 그를 두고
사람들이 자메이카에서 배출한 위대한 뮤지션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서인도제도 흑인들의 노동요인 칼립소를
메인스트림 음악계에 소개하고 히트시킨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자메이카는 고단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특히 스페인 영국의 식민지를 지내면서
1830년대에 서인도제도에서의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무려 40만명의
흑인들이 노예로 매매된 이른바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칼립소의 제왕 (King of Calypso) 
칼립소(Calypso)는 원래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식민지였던
캐리비안 제도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의 음악이다

서로 말하는 것도 금지된 노예들이
노래로 의사소통을 한것이 그 기원이라고 전한다

서인도제도 트리니다드섬에서 출발한 칼립소는
역사상의 사건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갖가지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즉흥적으로 만든
노래라고 한다

1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트리니다드섬의 카니발 시즌에 칼립소 콩쿠르가
개최되고 여기에서 입상한 사람은
칼립소니언(Calypsonian)이라고 불리고
우승자는 다음 콩쿠르가 열리는 1년간
킹 오브 칼립소 라는 칭호를 얻게된다고 한다

1940년대에 이미  럼과 코카콜라의 히트 등으로 
미국에도 소개되어 널리 알려진 칼립소가 본격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된 데에는
해리 벨라폰테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자메이카계 해리 벨라폰테(1927~ New York)는
20세기 중반 칼립소 음악을 세계의 음악으로
우뚝 세워 놓으므로써
칼립소의 제왕 (King of Calypso) 이라는 훈장을 얻었다

1955년에 미국의 포크 전통 선상에 놓인 곡들을 수록한
Mark Twain and Other Folk Favorites 이라는 앨범으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Calypso 라는 앨범으로
소위 대박 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Mark Twain and Other Folk Favorites 에서
이나 과 같은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
전통에 놓인 곡들을 선보인 바 있는 그가
본격적으로 아프리칸-아메리칸 이라는 자의식을 담은
앨범을 선보인 셈이었다

뮤지션으로 영화배우로 TV 프로듀서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면서도  소수의 음악에 관심을 가진 그답게
해리 벨라폰테는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운동가로서의
활동 경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흑인들과 소수민족의  인권과 보호에 꾸준한
관심을 표명해온 그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마르틴 루터 킹 목사처럼
존경 받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조안 바에즈(Joan Baez). 밥 딜런(Bob Dylan) 등
당대의 저항 뮤지션으로 이름 높은 뮤지션들과 연대하여 인종차별.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에서 헌신해왔다

그의 이런 활동은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이어졌고
흑인 사회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온 해리 벨라폰테는
샌디에고의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해리 벨라폰테는
부시 행정부의 부적절한 정책에 대해서
특별한 조율이나 비판을 해오지 않은
같은 흑인인 콜린 파월과 라이스 장관에게향해서

노예제도 시절 정확히 주인이 하라는 대로하면
그 노예는 농장의 집안에 들어가서 살 특권을
가질수
있었음을 비유하는 House slave 라고
독설로 노골적인 비난을 한 것이다

2007년 초엔 부시 대통령을
Greatest terrorist in the world 라고 매도하여
주목을 끌었다

물론 해리 벨라폰테의 언사가
사려 깊었는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해리가 활동가를 자처하는 여느 엔터테이너처럼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타협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잘알수 있다

해리 벨라폰테는 그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지나간 가수가 아니라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미국 내에서 소수 민족과 흑인들의 인권과 자유의
보장을 위한 머나먼 길을 앞장서 걸어온
뮤지션으로 여전히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적 영역이
칼립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메이카의 음악 외에도
이스라엘이나 인디언들의 음악과 같은
소수민족이나 제3세계의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꾸준히 대중들에게 소개해왔다

그는 제3세계의 가수들과의 듀엣 앨범을 통해서
미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는데
그리스의 나나 무스쿠리(Nana Mouskouri)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

등이 그런 케이스이다

아마 이들은 해리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메이카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미국에서 대중스타로 성공한 Afro-American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크리스챤의 미국 흑인)
대표적인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