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의 사대문
구한말의 사대문
동대문 (흥인지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성곽의 문이다
동대문(東大門)이라고도 한다
1396년(태조 5년)에 처음 지어졌다
1453년(단종 1년)과 1869년(고종 6년)에 고쳐 지었다
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은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가
단종 원년(1453)에 고쳐 지었고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흥인지문은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서대문 (敦義門)
서대문 (돈의문)
돈의문(敦義門)이라고도 한다
원래 사직동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위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의주(義州)로 빠지는 의주대로와 접해 있어
중국 사신은 이 문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처음 세울 때
다른 문들과 함께 건축되었으나
1413년(태종 13) 풍수지리설에 위배된다고 해
숙정문(肅靖門)·창의문(彰義門)과 함께 폐쇄되었다
그 대신 약간 남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도성의 출입문으로 사용했다
1422년(세종 4)에 다시 이 문을 헐고
그 남쪽 마루에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는 옛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
그래서 세종 이후 서대문 안을
새문안(지금의 신문로)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뒤 숙종 때 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나
그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되었다
현재는 당시 사진을 통해
돌로 쌓은 축대 가운데에 홍예문(虹霓門)이 있었고
그 위에 단층 우진각지붕의 문루(門樓)가 있었으며
주위에 낮은 담이 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대문 (숭례문)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 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숭례문은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화재가 발생하여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붕괴되었다
현재 복구공사로 2012년 12월 공사완료 예정이다
북한문 (홍지문)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서울 성곽과 북한산성의
방위 시설을 보완하기 위하여 세운 문
1921년에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다시 세운 것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