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국립공원

살핌과 나눔 2012. 4. 30. 11:16

 

 

 

국립공원

 

국민의 쉼터이자 여가 장소인 국립공원이 처음 지정된 것은 1967년이었다

그해 3월 정부가 제안한 공원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박정희 정부는 민·관 합동으로

지리산의 자연환경과 생태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제1호의 영예가 지리산에 돌아간 것은 6·25전쟁과 관련돼 있다

당시 공원법은

우리나라의 풍경을 대표할 만한 수려한 자연경관지를

국립공원 지정의 첫째 요건으로 규정했다

 

국립공원 지정 전인 1965년 당시 지리산 등산 안내도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이 기준에 따라 남한에서 풍광이 으뜸가는 것으로 꼽혀온

설악산이 우선 지정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6·25때 격전지였던 설악산에는 군(軍)이 주둔하고 있었던 데다

전쟁 당시 묻은 포탄과 지뢰가 곳곳에 깔려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필요했던 사전 환경조사 활동조차 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국방부가 지뢰 등을 제거하려면

많은 특수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시일도 상당히 걸릴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아 지리산이 제1호로 자리매김된 것이다

 

설악산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70년 3월 24일 제5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에도 국립공원 지정 논의가 있었다

1935년 일본인 학자 다무라(田村剛)가

백두산·금강산의 자연환경을 조사한 뒤

일본 정부에 금강산을 국립공원으로 우선 지정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등으로 무산됐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은

미국 와이오밍주 등에 걸쳐 있는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이다

미국은 수십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이뤄진

화산 고원지대인 옐로스톤을 1872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의 복리와 즐거움을 위한

공공(公共)의 공원이며 위락지라고 선언했다

 

이렇게 태동한 국립공원의 정신은 전 세계적으로 공유됐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국립공원 지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찰을 비롯한 사유(私有) 재산 이용 제한에 대한 반발 등이 컸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펴낸 국립공원 30년사에는

당시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스님이 건설부 청사에 와서

칼부림 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고

경주 불국사도 주민들이 며칠 동안 집단으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국립공원은 1988년 지정된 월출산까지 20곳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국립공원을 2~3곳 추가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