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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청마(靑馬) 유치환 (柳致環)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청마(靑馬) 유치환 (柳致環)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턴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동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어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저 거짓의 거리에서 물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유치환 (柳致環 1908.7.14 - 1967.2.13)
1908년 경남 통영 출생
호는 청마(靑馬)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靜寂)으로 시단에 데뷔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 간행
그의 대표작인 깃발로  허무와 낭만의 절규를 표현했다

1940년 일제의 압제를 피하여 만주로 이주
그 곳에서의 제2시집 생명의 서(書) 을 발표
각박한 체험을 읊은 시
수(首) 와 절도(絶島) 등을 발표했다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돌아와서 교편을 잡았다
1948년 제3시집 울릉도
1949년 제4시집 청령일기를 간행
6·25전쟁 때는 종군문인으로 참가
보병과 더불어 라는 종군시집으로 펴냈다

이후 교육자와 시인으로
자유당 말기 정치적 부정 부패가 극에 달했을 때
3.15 부정선거를 도저히 묵과하지 못하고
대구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에
정치권을 질타하는 시를 계속 발표했다



1967년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통산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간행했다

그의 시는 도도하고 웅혼하며
격조 높은 시심(詩心)을
거침없이 읊은 데에 특징이 있지만
이는 자칫 생경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어떤 기교보다도 더 절실한 감동을 준다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