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교회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
이곳 사업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척되고 있습니다
지난 화요일(9월 27일) 저녁에 14명의 교인으로
한국 땅에서는 첫 번째 그리스도교회 조직을 완료했으며
(1887년 언더우드의 보고서)
우리는 사방 8자 되는 방에 모여 한국식으로 앉았다
내가 영어로 기도하고 시작했으며
우리는 마가복음 1장부터 읽었다
(1887년 10월 아펜젤러의 일기)
19세기 후반 미국 북장로회와 북감리회가
각각 조선에 파견한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1887년 가을 조선에 정식으로 교회를 설립했음을 알리는 기록을 남겼다
언더우드 선교사 아펜젤러 선교사
이들이 교회 설립이라는 감격을 맛보기까지는
조선에 도착한 후 2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한 것은 1885년 4월 5일이었다
조선의 쇄국정책이 풀리면서
의료와 교육 분야에 선교사의 입국이 허용되자
조선 선교를 자원한 것이다
각기 다른 교단에 속했지만 일본에서 만난 이들은
그해 3월 31일 나가사키항을 출발한 상선 미쓰비시호를 함께 타고
부산을 거쳐 이날 제물포에 도착했다
당시 아펜젤러는 26살 언더우드는 25살이었다
한 살 차이였던 이들은 죽을 때까지 우정을 지키며
선교의 씨앗을 뿌리고 교육·의료사업에 앞장섰다
조선 정부의 전교(傳敎) 금지 방침이 느슨해지자
두 선교사는 서울 정동에 나란히 교회를 설립했다
새문안 교회 정동교회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가 정동 선교사 사택에서
14명의 신자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현재의 새문안교회를 창립했고
아펜젤러 역시 그해 9월에
정동에 벧엘예배당(현재의 정동제일교회)을 마련하고
10월 9일에 첫 공개예배를 드렸다
이 두 교회는 신자 수에서
한국 개신교계의 80%를 넘는 장로교와 감리교의 모(母)교회로 불린다
소래교회
인삼장수 형제가 황해도에 소래교회 세워다
한편 이들 외국인 선교사들이 도착하기 전
조선에는 조선인들이 설립한 개신교 공동체가 있었다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1883년 5월 세워진 소래교회 였다
소래교회 설립의 주역은
중국을 오가며 인삼장사를 하던 서상륜·상조 형제였다
서씨 형제는 1880년대 초 만주에 와 있던
스코틀랜드장로교 선교사 로스와 매킨타이어를 통해 개신교를 접했다
1882년 한글 성경 등
개신교 서적을 숨겨 들어오던 이들은 검문에 걸려 투옥됐다
탈출한 후 친척이 살던 황해도 장연으로 옮겨와 소래교회를 설립했다
서북지방에 개신교 신앙의 씨앗을 뿌렸다
1886년 무렵에는 약 70여명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는 기록도 있다
1887년초 언더우드가 조선인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본격화할 때
그를 찾아와 세례를 받고
새문안교회 설립 후 주축이 된 것도 소래교회 교인들이었다
또 서상조는 1901년 문을 연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 편입해
최초의 한국인 목사 7명 중 한명이 됐다
경기도 양지에 있는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정에는
1896년 증축된 소래교회의 두 번째 예배당이 복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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