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제국의 요새였던 페루의 마추 피추
잃어버린 잉카의 요새
[ Lost Inka Fortress ]
지난 300여년 동안 페루의 안데스 산맥 속에 있었다는
잉카의 한 잃어버린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은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탐험가들이 그 도시를 찾았으나 모두 헛수고에 그쳤다
마추피추산 근처의 정글과 언덕을 샅샅이 뒤졌지만
이렇다 할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실망한 그들은 그러한 도시가 존재할수 없다고 확신하고
수색을 포기했다
그러나 예일대학교의 하이어럼 빙엄이라는
젊은 라틴아메리카사(史) 조교수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기로 작정했다
그 또한 산악지대에 대한 탐색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먼저 수색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번번이 허탕을 쳤다
1911년 7월, 그는 또다시 수색에 나섰다
그는 두 명의 친구와 인디언 일꾼 몇 명을 대동한
긴 노새의 행렬을 이끌고 오솔길을 따라 우루밤바협곡을
올라갔다
비가 내리는 어느날 아침
빙엄의 수색대는 실의에 빠진채 캠프에 앉아
수색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의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지역의 한 개척민이 나타났다
그는 일행에게 강 건너 산등성이에 있다는
폐허가 된 도시에 관한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빙엄은 그 개척민과 함께 강을 건너서
700m 높이의 산비탈을 올라갔다
그러나 폐허가 된 도시의 흔적이라고는
아무 것도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두명의 인디언을 만나 물을 얻어 마셨는데
그 인디언들이 지나가는 소리처럼 하는 말이
바로 모퉁이를 돌아서면
오래 된 집들과 성벽이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실망을 겪은 끝이라
빙엄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잃어버린 도시가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잃어버린 도시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굉장했다
흠잡을 데 없이 제대로 축조된 단지(段地)가
100개의 층을 이루고 있었고
각 단지는 길이가 수백m나 되었으며
계곡에서 힘들여 날라온 흙으로 덮여 있었다
그것은 신세계의 바빌론이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가공원(架空園)이었다
그 도시에는
여러 채의 흰 화강암으로 만든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인구 2000명은 수용할 수 있을 듯 싶었고
아래에서 공격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스페인 군대로 부터
자신들을 지킬 안전한 곳을 모색한 끝에
잉카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여기에 이 도시를 세운
것이었다
그 도시는 걸작 건축품이라 할만했다
수세기 전에 잉카사람들은 바퀴의 도움 없이
이 화강암 돌덩이를 산 위로 운반했던 것이다
돌덩어리는 서로 같은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각 돌덩어리들은 불규칙한 모양으로 잘려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조각그림맞추기 장난감 처럼
옆의 돌과 서로 꼭 들어맞게 되어 있었다
이 도시에 살던 사람들의 마지막 운명은 아직
수수께끼에 속한다
그것을 설명하는 기록이 하나도 없다
이상하게도 이 마추피추의 도시는
마지막 날에 임박해서는 여자만의 도시가 되었던
듯하다
빙엄이 후일 다시 조직했던 조사대가
동굴 속에 묻혀 있던 174구의 해골을 발견했는데
그중 150구가 여자의 것이었다
빙엄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잉카의 귀족통치가 절정에 달했을 때
매우 아름다운 소녀들을 뽑아 귀족을 섬기고
종교의식을 돕도록 훈련시키는 특수학교가
잉카제국의 방방곡곡에 세워져 있었다
스페인군대가 진격해 오자 선택된 여자들 이라고 불리던
이 소녀들을 이 산중도시로 피난시켜 해. 달. 별들에 대한
예배와 천인공노할 침략자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 달라는
기도를 계속하게 했을 것이라고 빙엄은 믿었다
그 도시는 40년 동안 존속되었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여자들은 나이를 먹고 죽어갔다
그들을 수비하던 남자들도 흩어져 버리고 때맞춰 정글이
다시 마추피추를 덮쳐 이 속절없는 짧은 역사를 전할 사람을
아무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잉카인들은 글자. 쇠. 화약. 바퀴를 몰랐지만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강한 군대를 유지했다
제국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산맥을 따라 남북을 관통하는
두 갈래 길(잉카 로드)을 2만㎞나 만들어 광대한 영토를 통제했다
황제의 명령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두루 미처
새 한 마리도 황제의 명령 없이는 날지 않는다고 했다
겹겹이 쌓여 있는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돌로 지어진
마추픽추 도시가 보인다
15세기 당시 대부분의 민가들이 흙 벽돌집 인 것에 비해
마추픽추 도시의 집들은 모두 돌로 만들어져 있다
마추픽추에 대하여 문자로된 기록이 없어서 정확한건 없으나
이곳이 신을 모시는 신전도시 였다는 설과
잉카 왕을 섬기기 위해 바쳐질 여자들
즉 아끄야의 비밀스런 거주지였을 거라는 설도 있다
또 하나의 설은
잉카 왕의 휴양지였을 거라는 추측도 있고
밀림지역을 정복하기 위한 군사적인 요새였을것 이라는 설과
또 그 지역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이 일으킬 반란을 저지하기
위해 단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많은 설과 추측 때문에 더욱 신비로운 곳 마추픽추 !
크게 마을과 성소 경작지로 나누어지는
마추픽추 도시에는 태양의 신전. 뉴스따의 침실.
지하무덤. 왕의 궁전. 성벽. 계단식 경작지
농지의 꼭대기에는 공동묘지 와 전망대. 묘석돌이 있다
중앙광장을 두고
남쪽에는 3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과 대신전이 있으며
인띠와 따나와 경작지의 광장이 연이어 있다
중앙광장 북쪽에는 작업장. 교도소 등과 함께 인가들이
골목을 이루고 빽빽하게 벽을 세우고 있다
해시계라고 불리는 인따우아따나 (해를 걸어두는 곳이란 뜻)
제단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러 학자들이 15 세기 잉카인들이 금속 도구도 없이
어떻게 그 큰 돌들을 제단하여 건물을 지었을까 하는
수수께끼를 풀기위해 여러가지 실험을 하였다
모래와 물과 나뭇잎 등이 동원 되었으리라 추축 되고 있다
마추피추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돌을 석기나 청동기
도구로먼저 자르고 모래로 표면을 다듬는 전통적인
잉카 방식을 이용하여 만들었습니다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데 있어 대단한 솜씨를 지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돌을 쌓아 건물을 지을때 회반죽 없이 서로 맞추어
쌓았는데 얼마나 그 기술이 뛰어났던지 어떤 곳은 돌 사이에
칼날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확하다고 합니다
잉카인이 이처럼 회반죽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렇게 건물을
지으면 지진에 좀 더 잘 견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잉카인들은 바퀴를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건축물을 세우는 데 필요한 돌을 수백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밀어올려서 사용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아직도 몇몇 돌에는 손잡이가 남아 있는게 있는데
돌을 옮길 때 이것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돌이 제자리에 놓인 뒤에는 갈아 없앴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퀴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돌들을
이곳까지 운반하였는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마추피추가 있는 곳은 절벽 아래에 있는 우루밤바 강까지의
높이가 600m나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곳은 주위 산과 강에 의해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와도 같은 곳입니다
마추피추의
모습은 마치 말 안장과 같습니다
마추피추에는 사원. 창고. 거주지 집과 같은
약 140여 개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거주지 건물이지만 그 가운데 분수도 있는데
서로 통로와 돌을 뚫어 만든 상수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런 관개시설은 신성한 샘에서 각 집까지 물을 운반하는데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이곳에 거주했던 인구수는 1,200명 정도로 여겨지며
대부분이 여자나 아이 그리고 성직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마추피추는 3개의 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성스러운 구역. 일반 거주 구역. 왕족과 귀족들의
구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구역에는
인티와타나(Intihuatana) 돌과 태양의 사원.
그리고 세개 창문의 방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태양신에 바쳐진 것입니다
일반 거주 구역은
일반 거주민들이 살던 지역으로 창고 건물과
그들이 살던 단순한 집들이 있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의 구역은
붉은색 벽으로 상징되는 아무우타스(현자들)의 거주 지역
사다리꼴의 방이 있는 누스타스(공주들)의 거주 지역으로
나뉩니다
기념비적인 묘에는
조각상과 함께 그림들이 새겨져 있는데 곳은
제사와 제물을 바치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추피추의 유적 가운데 성스러운 지역에 있는
인티와타나(Intihuatana) 돌은 좀 특별한 존재입니다
인티와타나란 의미는 태양을 묶기 위하여(for tying the sun) 란
뜻을 지녔다고 합니다
동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태양이 하늘로 부터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므로
태양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 돌에다 묶어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 인티와타나 돌은
남미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의식용 돌의 하나로
일년 가운데 동지 때 태양과 일치되는 곳에 세웠습니다
하지만 인티와타나 돌 대부분이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없어졌습니다
마추피추의 인티와타나 돌이 파괴되지 않은 것은 순전히
20세기까지 이곳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덕분입니다
미추파추의 인티와타나 돌은 3월 21일(춘분)과
9월 21일(추분) 정오 때가 되면 태양이 이 돌 바로 위에 있어
돌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이 돌은 잉카인들에게 천체 시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추피추는
1981년 역사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1983년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추피추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지만
한편으로는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한 개발의 유혹이 끊이지않아
마추피추의 주변 환경은 날로 파괴되고 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에서 이곳을 위기에 빠진
100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할 것을 고려 중이라 합니다.
영국 BBC의 2008년 마추피추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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