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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

녹색(GREEN) 부드러운 충만 - 색의 신비에서




녹색(GREEN)
부드러운 충만
                    - 색의 신비에서


출판사 학지사에서 2004년 7월에 발간한
INGRID RIEDEL이 썼고 정여주님이 옮긴
색의 신비 (종교 사회 예술 심리치료에서 본) 란 글에서
렉토레에는 옛날부터 자신의 새들을 보호하며 날아다니는
모든 동물의 주인인 녹색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영원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녹색 남자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어떤 나쁜일도 요구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거의 언제나 숨어서 살고 있다
그가 모습을 보일 때면
그는 항상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곳을 선택한다

나는 유랑민들의 동굴과 구호시설 언덕과
한 때는 성령의 우물이었던곳 근처에 있던
그를 여러 번 보았다는 노인들과 알고 지냈다

나는 어렸을 때 녹색 남자가
그전처럼 자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두 번이나 보았으며
그때 일을 분명하게 기억한다

10살이나 11살 쯤의 카우차즈가 화창한 날 오후 4시경에
그의 아버지와 구호시설 언덕 아래를 걸어가고 있었을 때
아버지는 갑자기 멈춰서서 저것 봐 ! 하고 말하였다

나는 새들을 보호하고 날아다니는
모든 짐승들의 주인인 녹색남자를 바라보았다
녹색 남자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것처럼 그의 오른팔을 움직였다

나의 아버지는 안녕하세요 녹색양반 이라고 인사를 하였고
나도 안녕하세요 녹색아저씨 라고 하였다
녹색 남자는 낡은 보루의 동굴에서 우리를 쳐다보고는
안녕하세요 카우차즈씨 안녕 꼬마야 라고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그를 지나쳐 갔다
20보쯤 걸어갔을 때 나는 뒤를 돌아 보았다
녹색 남자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함게 겪은 그 일에 대해서
다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은 녹색 남자를 반드시 다시 만나고자 했다
그가 바위에서 잠이 들었다가 천둥 때문에 잠이 깨었을 때
다시 한 번 그 녹색 남자를 만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녹색 남자가 낡은 보루에 앉아서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는 것처럼
자기의 팔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에는 녹색 남자가 그에게 인사를 하였다.
꼬마 카우차즈야
네가 오랫동안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무슨일로 그러느냐?

녹색 아저씨 당신은 새들을 보호하고 날아다니는
모든 동물들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니 저에게 휘파람 소리를 잘 낼수 있는
어여쁜 지빠귀 새 한마리를 주세요

꼬마 카우차즈야
나는 나의 새들을 남에게 선물하지 않고
또한 그 새들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지 않는단다



자연의 경비병은 녹색남자 이다
그는 불법적으로 남용되는 모든 것에 반대하여 자연을 보호한다
그는 자연의 힘 특히 생명체들을 선물하지도 팔지도 않는다
그의 자태를 보면 그가 씨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초원 숲 꽃이 피어나는 자연 식물
녹색풍경과 숲의 그늘진 어둠들은 녹색에 대한
연상 검사에서 가장 빈번하게 연상되는 것들이다

녹색의 단어로 가장 많이 연상하는 것이 초원으로 25%였다
초원에서는 파랑(24%)이 연상되었다
다음으로는 빨강(14%) 과 노랑(11%)의 순서이다

물과 서늘함이 그 뒤에 나타나고
그 다음이 숲의 그늘진 어둠이 연상되었다
녹색의 뉘앙스를 말할 때에는
연두색에서는 수분과 발아와 보호림이 청록색에서는
물과 차가움과 얼음이 연상되었다



괴테는 녹색이 지니고 있는 조화롭고 균형을 주는 효과에 대해
이미 다음과 같이 쓴적이 있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더 이상 가려고 하지 않는다
괴테는 녹색을 자주색이 정점인 색 체계의 중심으로 여겼다

괴스틀린은 녹색은 우리를 단순히 고요하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부드러운 충만을 지닌 채
우리의 눈에 들어어기 때문에 녹색보다 더 편안한 색은 없다고
받아들였다

연상검사에 임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색에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부드러움과 쾌적함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또한 신선함과 평화로운 느낌을 덧붙이기도 한다
녹색은 심리적 접촉의 색이며
동시에 내적 후퇴능력 흥분 누적과 흥분제어라고 표현한다
이 처럼 다양한 녹색에 대한 반응에는
녹색의 뉘앙스가 작용을 한다

균형을 잡는 연두색이나 중간 녹색이외에
녹색을 자기 주장 지속성 자신감과
자아존중을 표현할수 있는의 활력의 표현치에 배치 할 때
검사의 기초가 되어준 전나무색 청록색 경향의 색들에는
변형이 있었다

녹색의 심리적 작용을 집중적 자율적이며
동시에 방어적 확실한 소유하고 있는 인내하고 있는 으로
일반적으로 표현된다

검사에 놓여있는 여덟개의 녹색계열의 카드 중에
전나무색을 가장 먼저 선택하는 사람들은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반대에 대해 대항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반대로 전나무 색을 마지막에 놓으면서
이 색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결 같은 성품이기는 하지만
반대에 부딪히면 저항력을 잃고
자기 자신의 요구가 생긴 긴장에 시달린다

전나무색을 기피하는 것은
자주 가슴과 심장이 죄이는 현상과 세력을 얻지 못하는
무능력에 시달리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외에도 녹색중에 중요한 색 성분은
황록색이나 번쩍이는 녹색이다
이 색의 표현치는 무엇보다 독살스러운 본능까지 이르는 탐욕이다

노랑이 녹색까지 접근하면
소모성까지 올라갈 수 있는 확장으로
열망에 대한 충동이 더 해진다

많은 남성 실험자들이 이 황록색 성분이
너무 자연속으로 들어가고 무성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에 안드는 것이라며 기피한다

소망이 충동적으로 과다하게 넘쳐흐르는 것을 다룬
어부와 그의 아내 라는 동화에서
어부는 부인이 원하는 것들을
가자미에서 가져오기 시작하였을 때
바다는 완전히 녹색과 노랑이며 더 이상 맑지 않는 상태로 표현이 된다

중간톤의 녹색은 균형과 만족의 색이지만
황록과 번쩍이는 녹색은 충동과 소모적 성장이나
열렬한 소원으로 넘어가는 반면
청록이나 전나무색은 고립과 자아 성장 과정의
견고성의 경향을 보여준다



내 마음은 녹색을 그리워하며
이 힘든 시간이 지나길 고대하니
혹독한 겨울은 너무 길고
길은 눈으로 덮여 있으니....

이 민요는 중부 유럽인들이 혹독한 겨울을 지난 다음 보게 될
녹색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눈과 마음은 초목이 다시돌아오는 것과
온기와 생명뿐만 아니라 동시에 봄의 느낌도 그리워하고 있다
들판과 목초지와 논밭의 새로운 녹색은
동시에 다가올 추수 생명의 보존과 포만에 대한
희망과 싹을 틔우고 있다

녹색은 원래 휴식 누워있음 휴양 꿈과 같은
초원정서와 연결된다

또한 녹색은 나무정서와 연결된다
나무는 우리와 함께 자라고 우리의 어린 시절과 함께 있으며
녹색에 대한 우리의 경험에 자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장하고 성숙하고 마침내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한 경험은
우리의 녹색 경험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친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는 없어져도
더운 여름밤에 사람들이 서로 함께 앉는 벤치에 둘러싸여 있는
나무는 아직도 있다
성장 성숙 그리고 보호와 그늘을 주고
다른 것과 연결되는 장소는 모두 녹색이다
녹색의 경험에는 숲의 정서도 해당이 된다.

밝은 너도밤나무에서 검은 전나무의 어두움까지
모든 그늘에 나타나는 녹색에 관계된 것과
생명을 완성해주는 측량하기 어려운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다
이것은 상징성에 반영이 된다

신뢰와 내적 공존을 나타내는 장소인 숲과의 결합색이며
그 결합으로 부터 놀라운 힘이 솟아날 수 있는 녹색은
지구상에 있는 다양한 기후대의 다양한 민족들을 통하여
고르게 나타난다



아라비아인 베두인 처럼 사막에 사는 민족들에게
녹색은 생명 그 자체를 구현한다
나무들이 있는 곳은 어떤 깊이를 가졌든
항상 물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사막에 사는 민족에게 녹색은 생명과 생존의 색이다
이러한 이유로 녹색은
예언자
모하메드와 그를 따르는 신봉자들을 상징하는
깃발의 색 이 되었다

즉 녹색은 모든 물질적 정신적인 선(善)의 표시이며
구원의 색이다
코란의 비전에서 보였던 것처럼
영원한 생명은 항상 녹색의 파라다이스 정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상상될 수 없다
원시림과 정글에 사는 민족들은 녹색을 다르게 체험한다

인간이 항상 새로이 노력하여 가까스로 얻어야만하는 식물들은
여기에서는 흔히 하루만에 인간의 생활환경을 넘을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버린다

여기에서 녹색은 생명을 주는 동시에
모든 문화를 집어삼켜 버리는 우세한 것으로 여겨진다
녹색자연은 여기에서는 위대한 어머니로서 기여하고
자양분을 주면서 또한 삼켜버리는 것으로 경험을 한다

녹색에 대한 인간들의 근원적인 경험도
생명의 원천과 태아 영역인 수분이 있는 요소와 연관이 된다



수분은 녹색을 만들어 낸다
습지와 늪지 초기 삶의 장소들은 자연에서는 녹색으로 나타난다
개구리와 두꺼비등 습지와 늪지 동물들이 생겨났다
태고적의 생산력과 상징성과 이들은 연결된다

녹색은 최초의 것이며 발아하는 것이다
천지 창조에 대한 수많은 보고에서 녹색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태초의 첫째 하천을 만든 정신의 빛은 녹색이었다
시바신은 녹색머리를 한 거북의 모습으로 세계를 어깨에 메고 있다

성경의 천지 창조 역사에서
하느님은 빛과 바다와 땅을 갈라놓은 후
셋째날에 식물을 창조하였다

최초의 생명력에 대한 관계는
자연적으로 성장된 것을 의미하는
영어의
GROW 같이 고대 표준 독일어인 GRUONI 에서도 증명이 된다

상투적인 말에서 초보자를
아직 덜익은 과일의 녹색처럼
풋사과 라고 하며
영어사용에서는 초보자를 녹색 뿔 이라고 한다

개구리왕자와 같은 동화에서
한 소녀의 성적인 성숙을 다룰때 녹색 동물인 청개구리
일리테스 두꺼비 녹색 뱀이 자주 대부로 등장한다
두꺼비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의미한다



여성과 남성의 성적 에너지는
하느님의 창조력 중에 일부분이라고 여겼으며
녹색으로 명시되어 있다
즉 어린아이를 자궁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중세시대에는 녹색으로 꾸민 방은
산욕을 위해 귀족들만이 가질 수 있는 방이기도 하였다

녹색의 상징성이 새로운 생명을 위한 것이듯
인간 신체기관의 기운과 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신체의 자율신경에 대해 말하며
미묘한 균형 장애를
자율신경의 근육긴장 이상 이라고 한다
동화들을 읽다 보면 녹색 잎의 치유력에 대하여 전승 된
지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동화 세 개의 뱀 모양 잎에서 죽은 여인이
녹색 잎 때문에 다시 살아나게 된다
요한묵시록에서는 녹색잎의 치유력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강 양쪽에는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있어서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은 만국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요한묵시록22;2)



중세 최초의 여성 저술가이자 의사인 힐대가르트 폰 빙엔은
Viritas
즉 녹색의 개념을 의학적으로 발전 시키기도 하였다
그 힘은 신의 창조력과 성령의 회복력에 의해 만들어져서
치유와 구원의 일치를 이루게 된다고 그녀는 설명한다

힐데가르트는 약화된 시력을 보강하기 위하여 녹
색의 잔디를 바라보거나 상상하도록 소개하며
녹색의 보석들을 사용하는 것에서 시작을 하여
신의 치유력인
가장 고귀한 녹색의 푸름 에 대한
신학적이며 의학적인 견해까지 그녀의 지식을 광대하게 펼쳤다

태양이 하루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새벽에
녹색도 가장 큰 힘으로 일어서는데
공기는 아직 축축하지만 태양이 따뜻해지면
풀들은 마치 양이 우유를 빨아먹듯이
녹색을 아주 탐욕스럽게 들이마시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열은 하루의 녹색 힘을 끓여서
열매를 맺게 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녹색의 힘은 빛에 자극을 받지만
종국에는 신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말을한다



오 신의 손짓인 녹색이여
당신의 손에 녹색식물을 심어놓으셨으니
태초에 녹색 힘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땅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어떤 농사도 필요 없었다

인간이 신을 외면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에
녹색의 힘이 약화되어 모든 녹색들은 시들수 밖에 없는
위협에 직면하게 되어 계속적인 보살핌을 필요로하게 되었다

그러나 녹색에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할수 있는 영원성의 힘이 남아 있었다

어떠한 생명도 죽어야 할 운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은 바로 생명 안에 있다
어떤 나무도 녹색의 힘 없이는 녹색으로 될 수 없고
어떤 돌도 녹색 습기를 지니지 않는 것이 없고
어떤 피조물도 이것 없이는 특별한 자연력이 없으며
살아 있는 영원성 자체는 녹색의 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녹색 힘은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피와 살에도 작용한다.
영혼은 육체의 녹색의 힘이다
영혼은 육체에 의하여 육체는 영혼에 의하여 작용한다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의 성적 능력에 녹색이 영향을 미친다

녹색 힘은 여성의 전성기 그 자체이다
녹색 힘은 여성과 남성을 결합시킨다

힐데가르트의 의술 전체는 녹색 힘의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다
힐데가르트에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는
중세시대의 전설적인 비교(秘敎)인 카발라교에서
녹색은 신의 자비를 나타내는 색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의가 자색의 친구인 것처럼
왕의 자비는 녹색 연인이다

카발라교도들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치된 견해가 전해진다
신의 은총과 엄격함은 흰색과 빨강 색으로 상징되는 반면
균형을 이루는 자비 안에서 통합은 녹색으로 묘사된다

티베트에서는
인간을 치유하는 효력을 가진 모든 고요함과 부드러움은
여신 녹색 타라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녹색과 파랑의 중간인 산악의 물과
밝은 모래 바닥위로 태양이 비치는 바다의 색인 터키색
즉 청록색은 녹색과 비교를 했을 때
그 색만의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청록색은 녹색보다 더 부드러우며
녹색의 희망적 내구력과 파랑의 청명한 깊이 사이의
분위기를 가진 중간 톤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록색도
녹색의 자연스러운 성장력과 파랑의 초월적인 깊이에 대해서
일정한 간격을 둔다
청록색은 일정한 후퇴와 방어가 있다

중간색으로서의 청록색은
초기 중세시대에 종교화들 중에 1040년경의 하인리히 Ⅲ세
성 복음집에 있는 두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그녀가
처음에는 정원사로 알았던 부활한 예수 사이에
애정 어린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림의 전체 분위기는
거의 초현세적으로 빛나는 청록의 기운을 띠고 있다

청록색은 슬픔과 부활에 대한 희망의 중간에서
이러한 경이로운 만남의 마법을 재현한다
뿐만아니라 청록색에서는
이른 아침 정원의 신선함 삶과 죽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투명성이 숨쉬고 있다

초기 세밀화를 보면 (1020년 힐다 필사본)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하여
공작석 같은 녹색의 초자연적인 파도에서 나타난다
이 색은 희망과 변화와 은총이 가득한 사건의 색이면서
동시에 특이한 운명으로 마리아가 겪게 될
미래의 외로움과 소외를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다




겨울과 죽음을 통하여 자연의 쇠락과 생성을 나타내는
식물신화는 우기 후에 땅에서 부터 솟아나는
모든 어린 녹색과 관계가 있다

이처럼 동방에서는 초봄이 되면
대지의 여신과 어린 식물의 남신인 타무즈나
아도니스 사이에 거룩한 결혼식 축제가 벌어졌다
이때 어린 녹색나무는 어린 식물신과 목동신을 상징하였다

비록 구약의 예언지들은 이 의식을 기피하였고
녹색의 나무로 행해지는 이러한 모든 것을 우상숭배
비난하였지만 그 흔적들은 오늘날 까지도 남아있다.

성모 마리아의 달인 오월에
성당과 집들을 어린 자작나무로 꾸미는 것은
생명을 다시 가져오는 어머니 여신을 상기시킨다

수 많은 고대 신화에 의하면
녹색의 식물신들은 지하의 불이 그들을 해롭게 하는
지하세계에서 겨울을 지낸다

식물신들은 그들의 통치 영역이
두 곳 즉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에 뻗어 있기 때문에
흔히 밖은 녹색이며 안은 빨간색으로 묘사된다
녹색신 오시리스는 봄과 식물의 신으로
여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시들게 하는 황폐의 신 제트에 의해
토막이 나서 나일강에 던져 진다



그는 봄마다 재생을하여 다시 발견되고
붉은 이시스의 사랑에 의해 치유된다
이와 같이 그는 죽음과 재생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봄이 되면 생명의 강신자로 지상에서는 녹색의 형상으로서
지하에서는 영원한 삶의 판관과 후계자로서
하얀색 형상과 자태를 나타낸다

하데스에 의해 기을에 시들어가는
자연과 저승으로 추방된 페르세포네는
봄이 되면 최초의 녹색 싹이 되어 지상에 나타난다
이 여신은 가을만 되면 지하세계로 돌아가는데
그곳에서 대지의 심장을 의미하는 석류씨로 연명을 한다

석류씨는 모든 것을 재생시키는 씨앗이며
대지 내부의 불에 관계하는
녹색 페르세포네의 내면에 있는 빨강이다
죽음과 생성신화의 후기 형태는
명확한 녹색 상징성이 우세한 성배를 둘러싼 신화권이다

성배는 에메랄드나 녹색의 크리스탈로 만든 잔
요셉 폰 아리마태아가 그리스도의 피를 받은 잔이다

성배는 빛나는 녹색 그릇을 통하여
모든 생명의 재생을 위한 조건인 사랑과 희생을 반영한다
생명과 음식은 녹색의 그릇에서 생긴다

성배를 대지의 품이나 생명을 주는 정령의 집으로
증명하기 전까지의 모든 중요한 시도들은
이 상징을 완전히 관철할 수 없었다
성배는 일생 동안의 탐구와 엄청난 시험과 변화의 과정을 거쳐
다시금 녹색의 상징성과 연결되는 기사의 탐구여행에 해당한다



기사의 탐구여행을 동반하는 풍요로운 녹색의 상징이면에는
아직 다른 녹색 단순히 녹색남자라고 불리는
위대한 동반자의 원형인 치드르에 대한 원형이 있을까?

치드르는 사막에서 녹색을 찾는 유목민들의 대부이며
여행자들의 동반자이며 신의 육화이며 심부름꾼이다
어떤 사람도 모세가 실수한 것처럼 그에게 질문해서는 안된다

그는 분명히 그가 길이며 진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형상을 쿠르드 민족의 동화 빨강머리 녹색 눈동자에
등장하는 여행친구에서 나타날수도 있다
이 친구는 동화에 나오는 속박된 주인공을 살려준다

녹색인 엘 치드르는 암 가장 모순되는
극단과 반대자들을 결합시킬 수 있고
막다른 상황에서 해결 방법을 알고 있다

그의 근원은 불분명하다
그는 아담의 아들이거나 대지의 모태 동굴에서 태어났는가?
그의 집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세상의 가장 바깥극에 있다

엘리아와 그리스도 처럼
그도 세상 종말에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엘리아와 유사하다

카르멜의 한 동굴에 보면 엘 치드르와 엘리아가 함께 숭배된다
엘리아는 붉게 타오르는 그의 마차 옆에서
녹색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두 모습은 변화의 원형이다
그들은 정화를 일으키기 위하여
어려운 위험과 유혹 속에 동행했던 자들을 혼란시킨다



자연의 정령인 메르쿠리우스 신은
자연의 창조적인 변화의 정신으로
특히 녹색 뱀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자연의 정령인 메르쿠리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마귀가 되어 버렸다
녹색의 피부와 커다란 녹색 눈을 가진
사탄 메르쿠리우스

사르트르 대 성당에 탄핵을 받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녹색사람은 마귀의 형상으로 후기 마녀사냥에 큰 역할을 하며
나쁜 사람은 자주 녹색치마로 나타난다
마녀들의 눈도 그래서 녹색이며
녹색의 기사도 역시 사악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의 무의식에서 녹색의 원형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는
꿈과 상상력이 나타남을 볼 수 있다
현재의 결혼생활과 신체적인 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50세의 한 여성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을 때
만난 녹색 돌고래를 상상한다

총명하고도 신뢰심을 가진 돌고래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녀는 돌고래 곁으로
다가가서 팔을 돌고래 목에 얹고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계속한다
그녀는 돌고래와 함께 수영을 계속하면서
점차 더욱 안전해지고 바다를 더욱 신뢰할 수 있는 느낌을 받는다

매우 영리한 동물인 돌고래는
옛날 부터 무의식의 심층부에 가까운 지혜의 상징이며
또한 오래전에는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에서는
희망과 자연의 지혜를 나타내는 녹색의 상징과 연결된다
그러한 녹색의 원형이 돌고래 상징과 연결되면
자연의 지혜로운 상태인 무의식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융은 황금빛 녹색의 모습을 한 그리스도가
밝은 빛에서 모습을 나타내며
자신의 침대 끝에서 그를 보고 있는 환영을 목격했다고 한다

어느날 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침대 끝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모습은 실체의 크기는 아니었으나
그의 육체는 녹색 빛이 도는 금색을 띠고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눈부신 모습이었으나 나는 그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융은 그 모습의 강렬함에 놀란다
그는 연금술에서 메르쿠리우스의 가장 고귀한 광석인
녹색황금과 비교된다는 것을 감지하고
직관적으로 파악할 때 까지는 피할 수 없는
환영의 그 강렬함에 놀랐다

융에게 나타난 꿈의 영상은
오히려 자신의 그리스도 상이
자연의 지혜를 구현한 메르쿠리우스의 정신과 결합하려는 것을
암시한다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 상에서 분열되고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영혼의 심층에 살아 계속 작업을 한 이 것은
새로운 전체성의 상징과 결합하려고 한다



십중팔구 융의 꿈에 대해 알지 못했을
마르크 샤갈은 1970년에 취리히에 있는
프라우 뮌스터 성당의 창문을 구성할 때
녹색-금색 그리스도를 그렸다

그 다섯 창문의 구성이 너무 인상적으로 두드러졌기 때문에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었다
녹색의 그리스도 창문은 높이가 12m로
각각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의 기본 색조를 지닌
네 개의 창문들 중앙에 있다
색체계의 중심이며 화해와 자비의 색인 녹색은
창문의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 녹색은 그리스도의 색으로
허리부분에서 발끝까지의 하체가
순수한 금색과 녹색으로 나타난다
녹색의 마리아와 아기 예수도 있는
녹색 생명 나무의 꼬대기 가지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주변에 커다란 녹색의 후광이 둘러져 있다

그 분은 녹색의 우주의 색과 그의 모든 힘을 끌어 들여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의 상징을 총괄한다
아마 녹색을 우리 시대에
예수의 가장 깊이 있는 공언 즉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